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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어린이집의 평범한 여름날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작성일 2015-09-01 조회수 8099



은화어린이집의 평범한 여름날



99.94점. 세이브더칠드런이 운영하는 서울 서대문구립 은화어린이집이 평가인증 3차 지표로 받은 점수입니다. 놀라울 만큼 높은 점수지만 선생님들은 “딱히 비결은 없다”고 말합니다. 굳이 방법이라면 ‘늘 해오던 대로 아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되, 평가인증을 기회 삼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고 실천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늘 해오던 대로’란 어떤 모습일까요? 평범한 어느 여름날 은화어린이집을 찾아 그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9:00 아이들의 등원, 아침 간식

 


아이들이 하나 둘 엄마 손, 아빠 손, 할머니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도착합니다. 홍은동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이곳까지 씩씩하게 온 아이들을 선생님이 맞아줍니다. 교실에서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사물함에 가방을 정리하고 나면 자유 놀이와 아침 간식 시간. 만 3세 잎새반 아이들은 쌓기, 역할, 미술, 언어 등으로 나누어진 교실 구석 구석을 자유롭게 누비며 놉니다. 무엇을 하라고 시키는 선생님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날 ‘교통 기관’이라는 주제에 맞게 세심하게 꾸며진 교실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블록으로 자동차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기도 하고 비행기 조종실 사진을 들여다보며 역할 놀이를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온 아침 간식. 오늘은 야채죽입니다. 은화어린이집의 점심과 간식은 서대문구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식단을 최대한 활용합니다. 영양과 자연식품 사용을 고려해 만든 이 식단을 한식조리자격증을 지닌 임숙효 선생님이 레시피로 풀어내면 조리실에서 김성화 조리사가 맛있는 점심과 간식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11:00 신나는 야외 놀이



은화어린이집 아이들은 봄, 가을에는 텃밭을 가꾸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즐깁니다. 이날은 만 3세 잎새반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날. 챙겨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간단한 준비체조를 하고 나서 어린이집 마당으로 나섭니다. 아이들은 능숙하게 손끝과 발끝부터 점점 몸 가까이 물을 묻혀 물놀이 준비를 마칩니다. 그리고 ‘하나, 둘, 셋’에 맞춰 풍덩!



까르륵 뛰어다니길 20여 분. 한 차례 기운을 쏟아낸 아이들이 하나 둘 도구를 집어 듭니다. 물뿌리개와 주전자, 구멍 낸 페트병 등을 이용해 물이 움직이는 원리를 익힙니다. 한 켠에서는 뜰에 있는 가지와 깻잎을 따다 찌개를 끓이는 요리 프로그램을 흉내 내기도 하고, 올망졸망 앉아서 차를 나눠 마시는 역할 놀이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아이가 물놀이를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도 있었고 감기에 걸린 아이도 있었습니다. 툇마루에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블록으로 성을 쌓아 괴물을 물리치고, 바닥의 개미를 관찰하며 야외 놀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12:00 밥그릇을 싹싹, 건강한 점심시간



아이들이 밖에서 노느라 조용해진 교실과 달리 조리실은 분주해졌습니다. 이날 점심은 달걀애호박볶음밥과 숭늉, 청포묵김무침과 저염 무생채. 특히 매주 수요일은 ‘저염의 날’이어서 소금 사용에 주의를 더욱 기울입니다. 평소에도 국의 염도가 0.4%가 넘지 않게 요리하는 데요, 이날 국은 간이 필요 없는 숭늉이어서 0%였습니다.



조리실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아이들도 식사 준비를 합니다. 노느라 미뤄둔 볼 일을 보고 놀면서 손에 묻은 오염물질을 깨끗이 씻어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곳 화장실에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화장실 각 칸에 있는 비상벨입니다. 이전에는 화장실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뒤처리가 미숙했던 것인데요, 도움은 필요한데 움직일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울어버렸던 것입니다. 이제는 곤란한 상황이 오면 벨을 눌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벨을 설치하고 처음 며칠은 아이들의 장난 신고에 선생님이 고생하긴 했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꼭 필요할 때만 눌러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식판이 보이시나요? 봄과 가을이면 어린이집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우는 아이들은 반찬에 담긴 햇살과 농부의 정성을 읽어낼 줄 압니다.




14:00 아가들은 코~, 언니 오빠 형 누나는 세상 배우기



뛰어 놀고 배불리 밥을 먹은 아이들이 숨을 고르는 시간입니다. 만 1세부터 4세까지 아이들은 잠을 청하고 담임 선생님은 이 시간 동안 학부모 수첩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갑니다. 유아 중에 잠을 자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어린이집 거실에 있는 미니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낮잠이 없이도 하루 일과를 소화할 수 있는 만 5세 아이들은 이 시간 안전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날 교육. 아이들은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날의 백미는 상황극이었습니다.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쑥스러움에 킬킬대기도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힌트를 따라가며 무사히 엄마를 만나는 것으로 상황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15:00 오후 간식



한낮의 해가 누그러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오후 간식 시간이 시작됩니다. 이날 오후 간식은 보리차와 시루떡. 줄을 서서 스스로 먹을 만큼 떡을 가져가는 만 5세 열매반 아이들의 모습은 익숙해 보였습니다. 다 먹고 나서도 원하면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굳이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자기 양껏 간식을 먹은 아이들은 식판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미처 참여하지 못했던 자유선택 활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좋아하는 놀이를 하며 어린이집의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제 뜻이 아니라 아이의 뜻을 생각해보는 것에서 존중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 만 1세 씨앗반 담임교사 임숙효 선생님


Q. 은화어린이집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11년 정도 일했어요. 만 1세 반과 2세 반을 주로 맡았습니다. 


Q. 만 1세의 어린 아이들은 소통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요, 이런 아이들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직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걸 잘 알아채기 위해서는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있어요. 아이를 제 뜻대로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관찰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존중하기 힘든 것 같아요. 교사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존중 받았다고 느끼기 힘들 테니까요.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은 장난감을 정리하고 손을 씻는 간단한 일에도 우리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예전에는 제가 아이를 번쩍 들어서 데리고 갔다면, 지금은 ‘한 번만 더 놀고 가자’라고 이야기하거나 ‘뛰지 마’ 대신 ‘천천히 걸어볼까?’라고 말해요. 또 야심차게 준비한 활동이라도 아이가 피곤해하거나 날씨가 따르지 않는 등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무리하지 않고 다른 활동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늘 대안을 마련하고 있어요. 


Q. 은화어린이집이 아이들에게 어떤 곳이 되었으면 좋겠나요?

어린이집이란 말 그대로 아이들이 집처럼 이곳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직도 아이들이 참 예뻐요. 보육교사라는 일은 아이들이 예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 같아요.



글 & 사진 | 고우현(커뮤니케이션부)





아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존중 받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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