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두 곳에 새 생명.. 그 586일의 기록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책 <놀이터를 지켜라> 펴내
‘고작’ 놀이터 두 곳 바꿨다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 다 보시면 앞 문장에서 ‘고작’을 빼게 될 겁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폐쇄될 위기에 놓인 서울 중랑구 세화, 상봉 놀이터 두 곳을 아이들이 모이는 진짜 놀이터로 바꾸는 586일의 기록, 제충만 국내옹호팀장이 책으로 펴냈습니다. <놀이터를 지켜라>입니다. 덩치가 산만한 제 팀장, 잘 울더군요. 태산같은 기획들, 많이도 깨지더군요.
▲ 바뀌기 전.
▲ 바뀐 뒤.
시작은 ‘미안함’
“놀이를 통해 성장한 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놀이를 돌려주기 위해 애쓴 흔적을 담았습니다.” 어릴 때 아토피를 앓았던 제 팀장,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놀이 덕분”이라고 합니다. 왜 이제 아이들은 놀지 못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빼앗았을까요? 제 팀장과 세이브더칠드런 동료들, 점심시간에 이런 대화를 나누다 스터디그룹까지 꾸렸습니다. ‘UNCRC31'. 아이들의 놀권리를 규정한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를 줄인 말입니다. 그때는 몰랐답니다. 이것이 일폭탄 ‘헬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이었다는 걸요.
당장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잖아?
당연히 질문에 부닥쳤습니다. “지금 학대나 허기로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는데 너무 한가한 소리가 아닌가?” 그때 제 팀장에게 한 아이 목소리가 떠올랐다는군요. 서울대사회복지연구소와 세이브더칠드런이 매년 꾸리고 있는 ‘한국 아동의 삶의 질 심포지엄’에서 위지오 어린이가 한 축사입니다. “평범한 아이들의 행복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평범한 아이들, 그 아이들의 “고통의 합”을 줄여보기로 했습니다. 모두 학원으로 흩어져버려 놀 친구가 없어 방학이 싫다는 아이들, 하루에 30분도 채 못 논다는 아이들, 쉬는 시간에도 조용히 공기놀이만 해야 한다는 아이들, 가만히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 말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나?
‘한국 아동의 삶의 질에 관한 종합지수 연구’를 보면 압니다. 아이들에겐 여전히 놀이터가 중요하답니다. “상당수 아이들이 놀이터를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중요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지역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때 가장 자주 거론한 장소가 놀이터”였다는 군요. 이런 와중, 제 팀장, 화가 솟구쳤습니다. 국토교통부에서 150세대 이상 아파트에 어린이 놀이터를 짓지 않아도 되도록 시행령을 바꾸려했습니다. “상위 법령에서 규정한 아이들의 놀 권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법령을 뒤지고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들에게 알린 결과 이를 막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놀이터를 지키자. “공간은 정치의 산물”이고 “한번 잃으면 회복하기 어려우니까요.” 사람들이 없애고 싶어 하는 놀이터가 아니라 만들고 싶은 놀이터여야 했습니다.
깨지려고 만드는 기획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안도감과 내가 좋아하는 주제를 일로 연결한다는 희열”에 들떠 만든 ‘대작’, 옥상 ‘하늘 놀이터’ 기획은 잘근잘근 씹히고 깨졌습니다. 이미 많이 팔았지만 더 팔아야했습니다. 발품. 이번에 정말 기가 막힙니다. “지금까지 놀이는 인류의 생존방식 중 하나였다. 그런 놀이가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세계를 구하려는 걸까요? 거대한 문서더미가 태어났습니다. 부장이 말했습니다. “이게 다 뭐야!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예요? 딱 한 가지만 하세요.”
깨지고 깨져 제 팀장, 가루가 됐을까요? 역시 혼자서는 안 됩니다. 서울시와 연이 닿았습니다.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라 안전검사에 불합격해 폐쇄될 예정인 놀이터, 그 가운데 몇 곳을 세이브더칠드런이 고쳐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조경작업소 울, 경기대 대학원 커뮤니티디자인연구실, UX디자인회사 pxd, 놀공발전소, 아트니어링, 스페이스톡 등 힘을 합쳤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2년 전 놀이기구가 철거 된 세화놀이터, 아이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그곳에 자전거를 탄 한 여자아이가 지나가며 그에게 섬광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2년 동안 미끄럼틀을 타 본적이 없어요. 놀이터가 생기면 매일 타고 싶어요.” 제 팀장, 웁니다. "세화 놀이터를 다시 만들어야할 이유를 찾았다...힘들 때 그 아이를 떠올리면 발을 내디딜 힘이 생긴다.”
누구의 놀이터냐
하고 싶은 건 많습니다. 이 놀이터도 멋지고 저 놀이기구도 놓고 싶습니다. 그때 나온 당시 팀장의 촌철살인. “이 놀이터, 제충만씨 거예요?” 제 팀장,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답니다. 그리고 자기반성. “놀이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과 주민들이 온전한 주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최대한 낮은 자세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게 진짜 놀이터 디자인이다.”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25번, 아이들, 주민과 함께 한 워크숍 수입니다. 어린이디자인워크숍을 꾸려 어린이디자이너들에게 바라는 놀이터를 그리게 하고 인터뷰도 했습니다. 이 그림,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미끄럼틀 옆에서 용이 불을 뿜습니다. 악어가 튀어나오고요. 경기대 이영범 교수는 악어를 보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물이 있었으면 하네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하려고 서울숲에도 갔습니다. 역시 멋진 미끄럼틀에 관심을 보이더니 얼음땡을 합니다. 아이들은 둘 중 뭐가 더 좋았을까요? 답은 얼음땡이었답니다. 야누시 코르차크는 <블룸카의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는군요.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하는 건 심장한테 뛰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야.” 제 팀장은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놀이터에 오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놀기 위해 온다. 놀이기구는 여긴 아이들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깃발 역할을 할 뿐이다.”
▲ 아이들이 그린 놀이터 아이디어
좋은 놀이터는?
난 반댈세. 할머니는 놀이터에 울타리를 치지 않으면 공사장에 드러눕겠다고 했습니다. 방치됐던 놀이터 탓에 밤마다 소음공해에 시달렸답니다. 고양이도 문제였습니다. 놀이터는 “동네가 안고 있는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놀이터를 공동체의 옥동자로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세화놀이터가 완성되자 한 아이는 조용히 이렇게 말해 제 팀장을 다시 한 번 울렸습니다. “내 놀이터를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놀이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 담당 공무원 등 ‘관계’가 태어났습니다. 놀이터가 완성되는 날, 테이프커팅이나 구청장님의 말씀은 없었습니다. 100일 뒤 주민들이 나서 놀이터 백일 잔치를 열었습니다. ‘난 반댈세’ 할머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다치지는 않는지 돌봐주는 지킴이가 됐습니다.
그래서 좋은 놀이터는? 제 팀장님이 얻은 대답은 이렇습니다. “내 놀이터라고 할 수 있어야 좋은 놀이터다.” 놀이터를 숨 쉬게 만드는 것은 멋들어진 놀이기구가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제 팀장은 이 책 계약금부터 수익까지 몽땅 세이브더칠드런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에 기부한답니다. 만에 하나 약속을 어긴다면, 제 팀장은 아주 많이 울게 될 겁니다.
글 김소민(커뮤니케이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