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 아이들과 '인생뜨기' ②] 20대 박세미 씨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
|
작성일 2017-02-08 조회수 5396 |
당신 인생의 ‘모자’ 이야기라고 이름 붙이겠습니다. 20대 취업준비생부터 70대 모자 수선의 달인까지,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캠페인’ 10주년을 맞아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기부테이너’(기부+엔터테이너)들이 1월 14~21일 잠비아에 모자 전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잊을 새라 삶은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내밀곤 합니다. 연령대가 다른 기부테이너들에게도 저마다 한가지씩 물음표는 있었습니다. 이 모자여행이 그들 인생에선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네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그 두 번째 이야기는 20대 취업준비생 박세미 씨입니다. "잠비아, 그곳에서 아이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았네" - 잠비아 아이들과 '인생뜨기’ 02- 20대 박세미 씨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갈증이 있는가. 무거운 여행가방에 카메라와 노트를 욱여 넣어본 적 있는가. 낯선 곳에서 도리어 위안을 찾은 적 있는가. 인생의 변곡점은 가끔 그렇게 다가옵니다. 현재 20대, 자칭 ‘취업준비생 6학년’. 많은 것이 ‘스펙쌓기’ 경쟁이 되는 현실에 좌절해서, 이번 세이브더칠드런 모자여행은 조금 더 순수하게 기부하고픈 마음으로 지원했고, 바라던 기부테이너가 되어 잠비아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고 맑은 눈빛을 만났습니다. 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도 조금 더 알게 됐습니다. “가장 큰 고민이 뭐였어요? 제일 답답했던 것은?” ▲ 같이 잠비아로 간 기부테이너들과 함께.(맨앞쪽) 모자여행에서 세미 씨가 기대한 건 작은 자원봉사 정도였는데, 실제로 얻은 건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는 결심, 그리고 하고 싶은 것과 현실 사이의 갭에 답답해하던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찾은 것. “못살고 힘든 나라, 잘 모르는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본 잠비아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어른이나 애나 수줍지만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어요.” 18살 때 동생과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원래 새로운 세상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번 잠비아 여행을 계기로 더 굳게 결심했습니다. 삶에서 중요한 건은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미있게 사는 것”이란 것도 다시 되뇌었습니다. 어른들이나 주변 친구들 말을 들으면 ‘나만 딴 세상 보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 용감하게 찾아가는 사람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비누클레이 놀이를 준비했습니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너무 자유롭게 잘 만들어요. 소, 개, 절구, 닌자, 휴대폰까지, 우와 상상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었어요. 또 모두 활달해서 자기 작품을 설명하려고 줄서서 기다릴 정도였어요. 위생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클레이 활동으로 비누도 만들 수 있으니 더 좋았고요.” 이번 모자여행에서 세미 씨는 사진으로 재능기부를 했습니다. 자신이 아끼는 사진도 콕 집어 설명합니다. 무거운 카메라가방도 내내 내색 않고 다닐 만큼 마음이 들떴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행복했습니다. ▲ “첫날 보건소 방문 때인데, 아이들에게 줄 풍선을 부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아이들이 오래 기다리느라 힘도 들고 시무룩해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거예요. 앞자리에 조로록 앉아 있던 그 눈망울들이 선해요. 애들이 집까지 한두 시간씩 걸어가야 해서, 풍선아트는 얼른 마쳐야 했고, 마음도 급했어요.” 많은 순간들이 가슴에 남습니다. 세미 씨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불러주던 순간의 감동은 특히나 잊지 못합니다. 그 외에도 매일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던 여자아이 넷 하나하나의 눈빛. 지평선이 넓게 펼쳐지던 길가, 숲길을 달리던 아이들, 녹색풍선을 든 아이가 웃던 모습, 엄마들은 뜨개질하고, 또 학교에 벽화를 그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빛이 환하게 비쳤던 첫날의 그 모든 순간들…. 한국에 돌아와서도 잊히지 않은 생생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고 먹먹했던 순간은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며칠간의 방문이 끝나는 날, 아이들이 뮤지컬처럼 노래도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르쳐준 영어로 된 모자송이었습니다. 털모자가 필요해/왜 그런지 아니/체온이 낮아지면 아기는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야 노래를 듣는 순간, 너무 멋지고 대견하고 노래도 좋아서 감동했습니다. 한국에서 2007년부터 수많은 이들이 10년간 모자뜨기에 참여했습니다. 의료지원이 부족하고, 저체온증으로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 참가자들이 직접 뜬 털모자가 해마다 보내지고 있습니다. 2016년 봄에만 잠비아에서 10만여 개의 털모자가 아기들을 만났습니다. 이미 10년이니, 이번에 만난 아이들 중에도 아마 우리가 뜬 털모자를 써본 아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얀 티셔츠를 나눠주고, 여기에 모자 그림 그리기도 했거든요. 태권도 수업에도, 마지막 날에도 아이들이 입고 왔습니다.” ▲ “기부테이너가 교실 앞에서 수업 시작 전에 하모니카 불면서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 부를 때 아이들도 막 따라하고 그랬어요.” ▲ “마지막 날, 헤어지는 날 사진인데요. 저희 수업 들었던 친구들, 그리고 학부모님들이 노래와 춤을 준비해서 저희에게 보여주셨어요.” ▲ “태권도 수업 전에 몸풀기 하는 모습인데,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구요. K-팝을 스피커로 틀어놓았어요. 우기라 운동장이 젖었어요.” 앞으로의 인생에 이 여행이 던져준 의미가 시간이 지나 서서히 바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이 여행은 잠시 쉼,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에게 찾아온 귀한 감동을 잊고 사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세미 씨는 말했습니다. 글 이선희(커뮤니케이션부) | 사진 박세미(기부테이너)
|
윗글 | [잠비아 아이들과 '인생뜨기' ③] 30대 김익순 씨 "내가 행복한 순간은..." |
---|---|
아랫글 | [잠비아 아이들과 '인생뜨기' ①] 70대 김정순 씨 '황홀한 황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