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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전쟁터 ‘우간다 난민촌’- MBC와 좋은 친구들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작성일 2017-11-29 조회수 5499



[MBC와 좋은 친구들]

생존을 위한 전쟁터 ‘우간다 난민촌’




키 작은 관목숲에서 크리스틴은 몸을 웅크리고 기다렸습니다.

총소리가 그치기를.

어린아이의 울음이 멈추기를.

정부군이 언제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 없이 덤불에 버려진 세 살배기 실비아를 그냥 두고 갈 순 없었습니다.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일행은 무모한 짓이라며 두 사람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2016년 7월 남수단에서 내전이 다시 발발했습니다.

크리스틴이 시장에 간 사이, 마을로 군인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강이 빨갛게 물들고, 마을 사람들이 눈앞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남편은 반군에 끌려갔으며, 친척집에 보낸 아이들의 행방은 알 수 없었습니다.

덤불에서 울고 있는 어린 실비아를 봤을 때, 크리스틴은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내 아이들도 살아만 있다면···.”



가야 했습니다.

눈에 띄면 어른이건 아이건 상관없이 군인들은 목을 벴습니다.

임신중이었던 크리스틴은 한 손으론 뱃속 태아를 보호하고, 다른 손으론 어린 실비아를 등에 업고 걸었습니다. 크리스틴이 정성껏 돌봐줬지만, 아이는 영양실조에 탈수증까지 겹쳐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땅에 떨어진 콩이나 옥수수를 주워 먹이는 일뿐이었습니다.




오직 아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크리스틴은 꼬박 일주일을 걸었습니다. 성한 발톱이 없었습니다. 이정표처럼 따라붙던 어린아이들의 돌무덤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자, 국경이었습니다. 국경을 넘는 순간, 집이 있고,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던 크리스틴과 어린 실비아는 하루 아침에 난민이 되었습니다.



난민등록처에서 크리스틴은 구호단체 직원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찾아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어린 실비아를 만났던 덤불의 위치와 당시 상황도 자세히 구술했습니다. 부모가 나타날 때까지 아이를 맡겠다고 하니, 구호단체 직원은 실비아에게 부모 없는 아이를 구별하는 흰색 팔찌를 채웠습니다. 그곳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흰색 팔찌를 차고 있었습니다. 하루 최대 100명이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난민등록처에서 사흘을 보낸 뒤, 크리스틴과 어린 실비아는 비디비디 난민촌으로 이주허가를 받았습니다. 크리스틴은 난민촌에 가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가족이 없는 실비아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난민촌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많을 때는 하루 최대 2,000여 명이 넘는 남수단인들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1년 사이 우간다에 온 남수단인들은 무려 110여 만 명. 서울 인구 10분의 1이 갑자기 인접국가인 중국으로 갔다고 하면 피부에 와 닿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식량, 식수, 의약품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우물에서 길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제한돼 있고, 보건소에는 기본약품들이 모자랐습니다. 식량배급일이 자꾸만 늦춰져 젖먹이들은 엄마의 빈 젖을 빨았습니다. 전쟁을 피해 어렵게 왔건만, 크리스틴과 어린 실비아에게 난민촌은 생존을 위한 전쟁터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난민촌 아이들은 잘 웃지도 울지도 않았습니다. 애초에 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처럼 무기력한 얼굴로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도대체 그 작은 눈으로 무엇을 보았길래, 칼과 총이 나오는 그림을 그리고, 밤이면 소리를 지르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텅 빈 눈이 된 걸까요. 어른들의 이기심이 벌인 전쟁으로 왜 아이들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


 
난민촌은 난민의 종착지가 아닙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때까지 잠시 머무는 기착지 정도로 여겨져서도 안 됩니다. 이곳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어른들은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아이들은 치료받고, 교육받아야 합니다. 전쟁과 폭력이 왜 나쁜지 학교에서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의 그림에 총과 칼이 아닌, 미래의 꿈이 그려져야 합니다. 그것이 폭력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간다 난민촌 봉사활동에 참여한 배우 이소연 

우리 손으로 전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아이를 치료할 순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순 없겠지만, 아이들을 다시 학교에 보낼 순 있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때론 함께 울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국경을 넘고 있을 남수단 아이들을 생각하며.



 주순민(후원개발부) |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 월 3만 원이면 한 아이를 심리치료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에 보낼 수 있습니다.
   월 3만 원이면 한 아이에게 기초적인 의료약품을 두 달 동안 지원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남수단 아이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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