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동구타에서 세이브더칠드런 구호 활동가로 일한다는 것 |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
|
작성일 2018-03-30 조회수 8803 |
시리아 동구타에서 세이브더칠드런 구호 활동가로 일한다는 것 지난 2월 말, 시리아 정부의 동구타 공격이 증대되며,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공격은 민간인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도 공격했습니다. 다섯 곳의 병원, 길거리, 빵집, 그 외에도 식량과 관련된 건물들이 공격받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수의 가족들은 추운 지하 혹은 벙커에서 떨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이나 음식 또한 전혀 구할 수 없었습니다. 8년째로 접어드는 시리아 내전. 민간인 1,310만 명이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전체 병원 중 절반이 넘는 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아동 175만 명은 학교에 다니지 못합니다. 아동 280만 명은 시리아 전역으로 피난해야만 했습니다. 내전이 시작되고, 세이브더칠드런은 지금까지 시리아 내에서 피난한 아동만 약 170만 명을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 시리아 알구타 지역 360도 VR 영상 세이브더칠드런과 파트너기관들은 현장에서 시리아 아동과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내 전쟁지역에서 다급한 도움이 필요한 가족뿐 아니라, 국경을 넘어 주변 국가로 안전을 찾아 도망칠 수 있었던 사람들까지 지원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리아에서 크게 ‘보건과 영양’, ‘아동보호’, ‘식량배분’, ‘교육’ 그리고 ‘주거지’라는 범주 아래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선, 시리아 서북부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은 1차 진료 시설 네 곳과 산부인과 한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시설에서 매달 약 2만 명이 진료를 받습니다. 환자 대부분이 아이들과 여성들입니다. 또한, 저희는 병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직접 찾아가 다양한 프로그램도 제공합니다. 아동은 지난 20년 중 어느 때보다 최근에 전쟁과 분쟁으로 가장 많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많은 시리아 아동이 죽음이나 신체장애, 징병을 마주합니다. 포위로 인한 인도적 접근이 거절당하는 것도 아이들이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시리아 내전에 있어 아동 보호는 세이브더칠드런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친화공간(Child Friendly Space)들을 운영합니다. 아동친화공간으로 저희는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전쟁으로부터 얻은 트라우마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필수적인 심리사회적지원 또한 제공합니다. 식량도 중요합니다. 현재 시리아에서 음식은 너무나 부족하고 비쌉니다. 정부가 관리하는 지역에서 몇 킬로미터만 떨어져도 다른 필수품목처럼 음식 가격이 약 9배나 오릅니다. 많은 시리아 가족들은 하루에 한 끼라도 먹어 생존하고자 합니다. 연료가 부족해 플라스틱으로 된 가구를 태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식량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긴급 식량 배급과 음식 상품권을 통해 가족들을 돕고 있습니다. 동구타와 같은 지역에서는 만 2세 이하 아동을 위한 보조 영양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조건 없는 현금 지원으로 사람들이 음식을 사고, 다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도왔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필수 구호 물품을 분배하기도 합니다. 동구타나 라카(Raqqa)에서 시리아 동북부로 피난하는 국내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olple) 수가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이들은 위생 키트, 조리기구, 침구 같은 물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저희는 이러한 필수 구호 물품과 함께 방수포와 연료, 담요 등도 나눴습니다. 지난겨울에는 추운 날씨로 떠는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담요 약 1,000개와 따뜻한 겨울옷을 지원했습니다. ▲ 지난 1월 홍수로 어려움을 겪은 시리아 내 국내실향민 아이들 이러한 실질적 도움을 넘어 세이브더칠드런은 국제사회와 분쟁 당사자들이 인도주의적 원칙을 따르고 시리아 아동의 미래를 보장하도록 강력히 권고해왔습니다. 얼마 전 3월 27일에는 UN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세이브더칠드런과 사진가 크리스 드 보데가 함께 작업한 시리아 7세 아동들 사진을 네덜란드 외교부 장관 스테프 블로크(Stef Blok)와 함께 제시하며 시리아 아동을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 UN안보리 회의에 시리아 아동 사진을 들고 참여한 네덜란드 외교부 장관 여러분의 도움으로 저희는 동구타에서 가장 심하게 타격 입은 지역 아동과 가족을 비롯해 많은 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분의 도움과 관심이 있어야만 저희는 이 아동과 가족들을 더 많이 지원할 수 있습니다. 여기,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세이브더칠드런 직원이자 구호 활동가인 아마드 이맘(Ahmad Imam)의 글을 공유합니다. 현재 시리아의 상황과 그가 시리아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 잘 드러나는 이 게시물은 지난 3월 16일 영국 언론 Sky news에도 기고되었습니다. 생지옥을 견디고 있는 시리아 아이들, 우리가 다시 일어서야 할 이유입니다 아마드 이맘* (원문: WHAT’S IT LIKE BEING AN AID WORKER FOR SAVE THE CHILDREN?) 태어난 지 5주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폭격으로 온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아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동구타에서 제대로 운영되는 많지 않은 병원 중 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 갓난아이가 막 고아가 되었다는 명백한 비극이 무색하게, 당장 더 큰 걱정거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동구타 전역에는 5년의 폭격으로 남아있는 분유가 없었습니다. 만약 아이가 먹을만한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이 아이는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한 젊은 여성도 긴급히 같은 병원을 찾았습니다. 공습으로 피를 많이 흘린 채 찾아와 통증을 거의 줄이지도 못하고 결국 손을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성도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아이를 진료하던 의사는 이 여성이 최근에 아이를 낳아 수유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폭격이 떨어지는 이 혼란스러운 전쟁 속에서 한 고아와 가족을 잃은 어머니가 이렇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둘 다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동구타에서의 삶입니다. 저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전쟁 전에는 관광 가이드로 일했지만, 관광 가이드로서의 삶은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평화 시위가 끝나며 다음 단계는 무력 분쟁이 될 것이 뻔했고, 저는 제가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구호 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 관광 가이드였던 아마드는 이제 구호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시리아 내전은 8년째에 접어듭니다. 수백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이 생존할 방법을 잃었습니다. 또, 인구의 절반이 넘는 이들이 집과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지금의 시리아는 마치 생지옥과 같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대가는 시리아 아동들이 가장 무겁게 치르고 있습니다. 아동들은 집에서, 학교에서, 놀이터에서, 병원에서 공격을 받았습니다. 아동 약 3백만 명은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찾아 강제로 고향 시리아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또, 아이가 봐서는 안 될 참상들을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이 아이들이 입은 마음과 감정의 상처는 영원히 치료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학교였던 돌무더기 위에 서 있는 아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최전선에 있는 집단 주거지에 있는 아이도, 바다 한가운데서 밀려오는 파도로부터 구조되길 간절히 바라는 아이도 만났습니다. 저는 지난 7년간 아이들을 만나며 어떻게 아이들의 희망과 꿈이 변해왔는지도 목격했습니다. 밝은 미래를 꿈꾸던 아이들은 그저 하루에 따뜻한 밥 한 끼를 먹는 것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돌아가신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깨는 것이 또 다른 꿈이 되었고, 이제는 날개가 생겨 이 세상에서 멀리 떠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날 동구타에서 아이들은 매시간 죽어가고 있습니다. 집, 병원, 구호직원들이 잔혹한 공격의 주 타겟이 되었고, 민간인 35만 명은 음식이나 물, 약도 없이 춥고 어두운 지하에 갇혔습니다. 동구타에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된 한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폭격이 심해질 때면, 저는 제 몸이 아이들을 감싸기에 충분하지 않아 늘 걱정합니다. 아이들을 재우려 할 때면 아이들은 겁을 먹은 채 왜 사람들이 우리에게 폭탄을 떨어트리냐고, 신은 우리를 사랑하시냐고, 신은 누구 편이냐고 질문을 하곤 합니다.” 전쟁과 폭력 그리고 공포만이 아이들의 유일한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을 볼 때 다음 공습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즐길 날이 올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묻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공원에 놀러 갈 날이 올 것을 우리는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 지난 2017년 세이브더칠드런 지중해 난민구조선 위에서 활동하는 아마드의 모습
저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며 만났던 아이들로부터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알레포에서 만난 10살 오마르(Omar)가 그중 한 명입니다. 저는 폭격으로 집이 무너지고 상처를 입어 병원에 왔을 때 오마르와 처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당시 오마르의 아버지와 두 형제는 폭격으로 모두 사망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오마르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마르는 계속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날 살리지 마세요, 죽어서 우리 아빠랑 같이 있을 수 있게 해줘요!” 몇 주가 지나고, 오마르가 병원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환자들에게 수혈할 피가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헌혈을 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오마르가 자신의 가족을 잃은 병원에 다른 이들을 도우러 돌아왔다는 사실에 정말로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병원에서는 오마르의 피를 채혈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이 어린 영웅으로부터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아이들에게서 오마르를, 오마르의 강인함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갈망을 봅니다. 모든 아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원하는데, 세상은 비참하게도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맙니다. 우리 모두 이 상황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연락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볼 수도 있고, 거리로 나가 이 상황을 알릴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는 사람들이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구호물자를 운반하며 모든 위험을 각오하는 단체나 사람들에게 후원해서 수백만 아동의 절망적인 미래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한 학교를 돕는 것으로 우리는 수백 명의 아이가 미소 짓게 할 수 있습니다. 혹은 한 병원을 지원해 다친 아이들 수천 명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이 광기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구호 활동가로 일하며 회복력에 있어서 어른이 아동에게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주변 모두가 무릎을 꿇고 있을 때도, 희망이 너무도 멀어 보이는 가장 어두운 시간에서도 다시 일어섭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우리가 다시 일어나 앞을 바라보며 계속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줍니다. 글, 번역 김도화(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 |
윗글 | 방송 그 후, 다은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죠? |
---|---|
아랫글 | 고운 목소리로 국내 아동을 도운 '사랑의 하모니 생명의 소리' 합창단을 만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