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홍수, 지진, 무력분쟁과 내전, 전염병….
인간의 대지는 때로 고통으로 가득하고, 삶은 커다란 위험에 직면합니다.
'가장 먼저 현장에 가고, 가장 마지막에 현장에서 나온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세계 각지 재난현장에 달려가 초기단계부터 구호물자를 전달하고, 특히 아이들이 하루빨리 평범한 일상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교육, 심리정서치료 등 다각적인 아동보호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기상황이 지난 후, 다시 삶을 계속할 수 있도록, 생존과 안전, 위생, 건강, 교육, 경제적 자립을 위한 통합적이고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합니다.
여기 그런 멋지고도 힘든 일에 뛰어든 인도적지원 활동가, 김아름 팀장이 있습니다. 늘 환하게 웃고 빠른 말투로 당차게 해외사업부 인도적지원/보호팀을 이끌어가는 그녀를 소개합니다.
▲ "일 년에 대여섯 번은 출장가고, 정기적으로 사업장 모니터링을 해요. 현장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매력이고요. " 세이브더칠드런 해외사업부 사무실에서. 2018.
반가워요. 인도적지원/보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어떤 일인가요?
인도적지원은 홍수, 태풍 등 자연재난을 포함해, 내전, 분쟁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위기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입니다. 시리아내전이나 아이티 태풍, 홍수, 네팔대지진, 로힝야 난민…, 이런 인도적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세이브더칠드런 연맹이 지원 여부, 지원방식을 결정하고,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도 동참합니다.
어떻게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고, 또 인도적지원 활동가가 됐나요?
원래 영문학과 불문학을 복수전공 했어요. 패션회사에서 2년 일했는데 저와는 맞지 않았어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하던 차, 국제대학원에 진학해 국제개발, 국제지역학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제네바국제대학원에 교환학생으로 유학 갔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인턴십을 마쳤죠. 그러면서 국제적 시각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는데, 유엔기구는 직업안정성이 적었고, 또 저는 ‘노동’ ‘인권’ 주제보다는 다른 분야 일을 하고 싶었어요. 좀 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 남을 돕는 일, 그런 걸 찾았지요.
그때 인턴십을 같이한 동료가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채용공고를 소개해줬고, 2012년 해외사업부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인도적지원 업무를 중심으로 일했어요. 벌써 7년차네요.(웃음)
인도적지원활동 현장 경험이 여기선 그 누구보다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와 잘 맞았고 인도적지원 현장 볼 기회가 많았어요. 일 년에 대여섯 번은 출장가고, 정기적으로 사업장 모니터링을 해요. 현장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매력이고요.
세이브더칠드런은 곧 100주년을 맞이하는 국제 구호개발 기구답게 전통이 오래된 기관이라 역량, 전문성 측면에서 도움받을 기회가 많아 정말 좋습니다. 특히 현장과 체계적인 구호활동, 노하우 등 자산이 축적된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에서 트레이닝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 요르단 자타리 캠프 아동친화공간(CFS) 활동 모니터링 중, 아이들과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 2014.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이 자부심을 갖는 인도적지원 활동가 훈련, 정말 궁금합니다.
현장에 가면 정말 아비규환이거든요. 뭘 해야 할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처음엔 정신이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미리 트레이닝을 많이 해야 하는 거죠.
현장트레이닝이 단계별로 있어요. 예를 들면, 초급코스 이후 인도적실행 프로그램(HOP, Humanitarian Operation Program)을 시뮬레이션(모의훈련)해요.
이를테면, 런던에 도착해요. 그러면 세이브더칠드런 각 회원국이나 NGO의 인도적지원활동가 25~30명 정도를 꾸려요. 바로 오지로 갑니다. 7~8명당 텐트 한 개, 한 팀당 무전기 두 개를 일단 줘요. 전원 핸드폰 압수에 비상전화번호만 하나만 알려줘요. 곧바로 재난상황을 준 뒤 시뮬레이션을 시작하죠. 이걸 10일간 아침 7시에 시작해 밤 12시까지 해요. 죽을 지경이죠. 극도의 재난상황에 대응하는 훈련인 거예요. 욕구조사, 수요조사, 상황보고서(Sitrep, Situation Report) 작성, 보도자료까지 써요. 시뮬레이션 트레이너들도 기존 수혜자들로, 훈련생과 비슷한 수의 전문가 25~30명을 섭외해서 거의 1:1 훈련에, 마크 차고 조끼 입고 역할극까지 하니 질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실무와 현장실습, 이론을 접목시켜 최대한 자세하게 하는 거죠. 커리큘럼이 너무 잘되어 있어요.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이 이렇게 탄탄한 현장 프로그램을 갖추기까진 시행착오나 현장경험이 많았겠어요.
이렇게 노하우를 축적하기까진 국제사회의 반성이 있었어요. 1994년 르완다대학살(1962년에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르완다에서는 투치족과 후투족의 분쟁이 시작됐다. 내전과 학살로 100만 명이 죽고, 200만 명이 난민이 됐다.-편집자) 이후, 그야말로 온갖 데서 다 와서 인도적지원활동이 혼란스럽게 이뤄졌어요. ‘서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혼란, 오히려 재난당한 지역사회가 더 어려워지게 된 무정부 상태였어요. 국제사회에서 그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인도적지원 부문에서 최소기준권고를 만들게 된 거예요. 사업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도 만들고, 조정도 하게 된 거죠.
즉, 유엔 클러스터 시스템(Cluster, 다른 유엔/비유엔기구와 협업해서 각 부문마다 주무기관이 있고, 각 부문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지정된 전문기관이 조정과 주도적 역할을 한다.-편집자)이에요. 인도적지원 부문은 UNOCHA(유엔인도주의조정국)가 조정 역할, 즉 헤드 오피스예요.
세이브더칠드런 등 다양한 기구나 기관들은 인도적지원 상황이 발생하면, 클러스터 시스템에 등록하고 UNOCHA가 이 등록된 기구/기관들에 (1)분야․영역(섹터) 조정 (2)지역․인력 배분을 하죠. 보건영양, 교육, 식량배분, 아동보호 등 다양한 일을 나누는데, 여러 기관간의 업무조정이 UNOCHA를 통해 이뤄지는 거예요.
긴급한 재난현장에서는 조정과 배분을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이 필수네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주로 어떤 영역을 담당하나요?
영역(섹터)별로 클러스터 리드가 따로 정해져요. 보통 인도적지원 현장은 7개 영역으로 나누는데요, 아동보호, 보건과 영양(둘 다 WHO, 세계보건기구), 교육(유니세프/세이브더칠드런), 급수/위생, 식량배급(WFP, 세계식량계획), 주거지/비식량물자 등이죠.
특히 이 중에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유엔기구가 아닌데도 유니세프와 함께 교육 영역을 공동 리드하는 유일한 비유엔기구입니다.(웃음) 이건 대단한 거예요.
수많은 인도적지원 현장에 가셨는데, 막상 도착하면 현장은 어떤가요? 처음에 시행착오 많이 거쳤다고 들었습니다.
2014년 1월, 필리핀 하이옌 태풍지역에 처음 도착했어요. 전 구조운영 등 현장 모니터링을 갔지요. 초동대응은 발발 직후~3개월, 조기복구기간은 보통 3개월째~1년 정도 잡아요. 엄청난 태풍이 지나간 지 2개월 뒤였는데 여전히 수마가 휩쓸고 간 아수라장 그 자체였어요. 1만 명이 사망한 CAT(Category) 1 규모의 엄청난 재난이었어요.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도 몇 억 모금을 하고 사업을 시작했으니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차 간 거였어요. 여전히 시장도 기능하지 않고, 도시엔 쓰레기와 잔해가 가득했어요. 국제구호단체들이 많이 와서 활동중이었는데, 임시병원이 두 군데 있고, 생계수단인 코코넛나무며 배들이며 모두 파괴됐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열심이었죠.
현장에 도착해서 저는 인도적지원 사업운영 모니터링을 시작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보다 필리핀 사람들의 복구의지였어요. 엄청나게 강했어요. 구호활동가들 사이에선 구호 의존도가 높은 다른 지역에 비해, 필리핀은 조기복구가 그래도 빨랐던 나라예요. 모든 구호는 주민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거든요. 안 그럼 복구나 회복이 느려요.
일단 복구시도는 재건사업, 재건노동력에 대해 임금(cash for work)을 지불하면서 시작돼요. 자본, 노동훈련을 제공하면서 복구노동력을 키우는 거죠. 무너진 학교, 집, 도로를 짓게 돕고, 그 시설과 재건능력이 다시 지역자산이 되게 순환시스템을 만들어요.
▲ 에티오피아 가뭄 대응사업 모니터링 출장.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지원하는 보건소에서 5세 미만 아동 대상으로 제공하는 영양, 보건 서비스를 받은 수혜자와의 인터뷰 모습. 2017.
재난산업(Disaster Industry)의 사례가 많다고 비판하셨는데. 과연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태국의 어떤 NGO 사례인데요, 이 단체가 여러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예요. 일단 클러스터 시스템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또 구호단체들이 지역 사람들에게 주는 임금, 즉 노동일당을 합의하는 게 원칙인데, 이 단체가 자기들만 일당을 더 높게 준 거예요. 구호활동의 기준에 맞게 안 하고 더 배분한 거죠. 일례로 곡물가격이 오르면 인플레이션까지 생길 수 있어요.
이런 특수한 재난현장에서 클러스터에서 합의된 약속을 안 지키는 부작용은 커요. 문제는 안 지켜도 제재수단도 없어요. 이런 기구들은 자기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나오는 식이예요. 지역에 문제를 만드는 것도 모르는 거죠. 그걸로 자신들을 홍보하고 내세우는 곳들이 있어요.
물론 모든 시작은 선한 의도겠죠. 그런데 선한 행동이 절차, 규범 안에 있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은 혼란을 가져온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이 태국 단체 사례처럼요.
제가 존경했던 한 활동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밥도 못 먹고 못 씻고 밤낮으로 구호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 지역의 주민-정부 모임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첫 번째 피해는 쓰나미, 두 번째 피해는 NGO 쓰나미’였다는 말을 듣고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요. 즉, 쓰나미 재난이 지나자 온갖 단체가 와서 깃발 꽂고 혼란만 더 가중시켰다는 거예요.
저는 이 말이 너무 충격이었어요. 안 그래도 재난이 쓸고 간 지역에 우리가 가서 더 혼란만 일으킨다니, 너무 힘이 빠지더라고요.
원칙이나 전문성이 그래서 더 필요해요. 일례로 포항대지진 때, 스트레스에 좋다고 웃음치료 해준다고 선전하는 곳도 있었어요. 선한 마음만으론 안 되는구나,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재난위기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아이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 어른들이 알아야 할 것은요?
무엇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중심 기관이에요. 휴교나 학교가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고 난민촌 설치 후 특히 아동친화공간(CFS), 임시배움터를 운영해요. 아이들이 그런 공간을 무척 고마워해요. 아이들은 ‘일상을 회복하게 해주면, 즉 재난 이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해주면’ 회복돼요. 심리적 응급처치 프로그램도 운영해서 재난의 트라우마를 최소화해요. 아이들 내부의 회복탄력성을 높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이런 배움과 놀이 공간에서 지내면서 아이들이 조금씩 밝아져요. 그전엔 충격으로 야뇨증, 복통, 열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서서히 잠도 잘 자고 놀아요. 이런 공간에서 한두 달 지나면 아이들이 많이 좋아집니다. 재난상황에서 그 누구보다 아이들은 신체적, 정서적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요. 아이들의 일상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하는 CFS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크게 느껴요. 그 점이 너무 보람 있어요.
인도적지원 현장에서 심리적 응급처치, 즉 PFA는 왜 중요한가요?
신체적 위급상황에서는 CPR(심폐소생술)이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면, 큰 충격을 받는 정서심리적 위급상황에서도 이런 응급처치가 필요해요. 이게 PFA(심리적 응급처치)입니다.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정상적 삶을 회복할수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중요하고, 세이브더칠드런이 잘하는 매뉴얼이죠. 아이들의 경우를 보면, 아동친화공간 등을 통해 PFA를 하는 거죠. 그래서 PFA에서는 보고(Look), 듣고(Listen), 연결하라(Link) 이 세 가지가 중요한 원칙입니다. 아이 스스로 회복력을 갖도록 하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적인 곳에 연계해주는 거죠.
인도적지원 활동가, 세이브더칠드런 직원으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꼭 지켜야 한다고 믿는 원칙은?
이 영역에선 제1원칙이 사람과 지역에 대한 ‘보호’예요. 즉, 해를 끼치지 말라. 적어도 아까 말한 ‘두 번째 쓰나미’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제1원칙이 이거라니, 처음엔 좀 힘들었죠. 이게 무슨 의미냐, 해나 끼치지 말아야 한다면…. 회의도 들었고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이게 올바른 원칙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세이브더칠드런이 가진 자산, 즉 전문성이나 프로그램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이게 자부심이 됐어요. 저는 우리가 ‘아동’을 대하는 기관이라는 게, 미래를 변화시키고 보게 하는 일을 한다는 게 너무 좋아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이나 행복했던 경험은, 혹은 가장 힘든 때가 있었다면?
저는 아이들이 고맙다는 말을 할 때보다도, 꿈이나 신념, 생각이 뚜렷이 없던 아이가 ‘꿈이 생겼다’고 할 때 정말 보람을 느껴요. 특히 재난지역이나 사업장의 아이들이 자신과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싶다, 이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정말 기쁩니다. 의존적인 수혜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행동가가 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가장 힘든 적은 점차 현장과 떨어지면서 행정업무나 취합 등의 일이 더 늘어가는 거요. 실질적인 일의 비중이 줄어드니 이걸 조화시키는 게 과제가 되고 있어요. 또 두 달에 한번꼴로 해외출장을 가서 짧게는 1주일, 길게는 2주일을 보내는데 체력이 떨어지는 것, 제 아이들 맡아줄 사람 찾는 일이 늘 고민이에요.
인도적지원 활동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하신다면?
무엇보다 국제적 사안에 늘 관심을 가지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훈련이 필요해요. 열정만으로는 오지 않았으면 해요. 정말 어렵거든요. 쉽지 않은 일이예요. 무엇보다 힘든 사람들을 계속 봐야 하니까 마음이 강하고 단단해야 해요. 현실은 척박합니다.(웃음)
이번에 우리 팀 대리랑 같이 에피오피아 출장갔을 때도, 텐트 1개에서 생활하면서 전깃불은 딱 저녁에 몇 시간 들어오고 페트병 잘라서 샤워하며 지내야 했어요. 벌레도 많아요.(웃음) 이건 몇 년 지나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인도적지원 현장에서 배운 인생의 법칙이 있다면?
무엇보다 ‘전문가는 거리유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요. 저는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을 많이 봤잖아요. 특히 서양 활동가들의 경우를 몇몇 보면,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꽤 있고 이혼율도 높고 알코올에 의지하기도 해요. 힘든 상황을 많이 목격하니까요. 저도 개인적으론 종교나 기도에 의지할 때도 있어요.
또 늘 삶에 대한 열정이 있고,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제 아버지를 보면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그런 좋은 영향을 많이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 "특히 재난지역이나 사업장의 아이들이 자신과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싶다, 이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보람을 느껴요. " 세이브더칠드런 해외사업부 사무실에서. 2018.
그저 평범했던 한 직장인에서 전 세계 재난지역으로 뛰어드는 인도적지원 활동가로 거듭나기까지, 김아름 팀장은 무수한 곳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같이 울고, 주민들과 힘을 합해 폐허에서 조금씩 꿈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건네주며 같이 성장하고 싶어합니다.
모든 이의 경력은 처음엔 백지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이 달라지고, 그 눈빛에 자신감을 가지도록 힘을 주는 것은 바로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겠다는 단단한 의지였습니다. 누군가를 도우면서 바로 나 자신과도 대면했습니다. 오늘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글 이선희(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 | 사진제공 김아름, 세이브더칠드런
■ 2017년에만 해도 동아프리카 가뭄대응사업, 분쟁지역 난민지원사업, 시에라리온 홍수‧산사태 지원사업, 재난베트남 위험경감과 기후변화 대비 역량강화사업 등 작년부터 올해까지 전 세계 재난현장에 세이브더칠드런이 함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