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동 삶의 질 “도시와 농어촌 간 불평등 커” |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 |
|
작성일 2018-09-04 조회수 8742 | |
올해 네 번째로 한국 아동의 삶의 질 조사결과 발표
공부만 하면 되는 나이에 아이들이 무슨 걱정이 있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성공한 어른이 되기 위해 지금의 행복은 잠시 미루고 학업에만 열중하면 된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정말 그럴까요? 아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지금의 행복’에 무심한 사이, 한국 아이들의 ‘삶의 질’ 격차는 지역별로, 가정 형태별로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부와 성공한 삶만 강조하느라 우리 아이들, 여가 시간이 있어도 제대로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되기도 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진행한 <한국 아동의 삶의 질에 관한 종합지수 연구>에 담긴 2018년 현재 한국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2012년 아동행복지수를 개발한 이래 올해 네 번째로 진행된 이번 연구는 전국 17개 시도의 초3, 초5, 중 1학년 아동 총 1만 350명과 그 학부모를 설문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번 연구결과는 8월 30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삼익홀에서 열린 “2018 한국 아동의 삶의 질 심포지엄”에서 발표됐습니다. 도시와 농어촌 불평등 지속
올해 조사에서 부산, 세종, 대전, 대구 등 대도시 아이들의 행복도가 높은 반면, 경북, 충남, 전남 등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습니다. 도시와 농어촌 간 격차는 2012년 1차 조사부터 올해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양상이기도 합니다. 아동 삶의 질 종합지수(Child well-being composite index)로 측정한 부산 아이들의 삶의 질은 모든 영역에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며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1위를 기록했습니다. 조선업 불황으로 경기가 어려워진 울산이 지난 조사(2015년) 2위에서 11위로 큰 폭으로 하락하며 광역시 중 가장 낮은 순위를 보였습니다. 다만 지난 조사에서 16위로 최하위였던 전북은 이번 조사에서 서울, 경기에 이어 8위로 약진해 지역사회의 노력에 따라 아동의 삶의 질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심포지엄에서 전북교육청 이승일 정책공보담당관은 취약가정 아동의 학습과 여가활동 지원, 방과 후 학교 놀이프로그램 도입, 고입선발시업 폐지 등 아이들의 행복도 증진을 위한 전북교육청의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이승일 담당관은 “아동 삶의 질이 전국 꼴찌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고 도 교육청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을 고민하고 시행했다.”며 “아이들의 행복과 직결되는 문제에 집중한 결과 빈곤가정 등 취약계층 아이들 지원, 놀이 활성화 등 맞춤형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동 삶의 질 종합지수는 건강, 주관적 행복감, 아동의 관계, 물질적 상황, 위험과 안전, 교육, 주거환경, 바람직한 인성 등 8개 영역 46개 상세 지표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산출됩니다. 영역별 순위를 본 결과, 상위권 시도들은 8개 영역 대부분에서 좋은 성과를 보인 반면, 하위권 시도들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낮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도시와 농어촌의 불평등이 한 두개 영역이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 결과입니다. 이러한 격차는 재정자립도와 사회복지예산 비중 등 경제적 요인과 문화·예술·스포츠 관람 비율 등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문화인프라가 적은 농어촌 지역 아동의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 데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이번 연구의 책임 연구자인 이봉주 교수(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아동의 삶의 질에는 경제적 요인 뿐 아니라 사회·문화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지역 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아동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에 대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학원에서는 지루하긴 한데 그래도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해요. 핸드폰 하면 너무 노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되고…” 이번 연구에 참여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2016년 17개국을 대상으로 한 <아동 삶의 질 국제비교조사>에서 한국의 중 1 아이들은 시간 사용과 자유시간 만족도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에 대한 심층 조사를 위해 중학교 2학년 학생 36명에게 시간 사용과 자유시간 만족도에 대한 초점집단면담을 진행했습니다.
조사 결과 학업에 쓰는 시간의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조사에 참여한 거의 모든 학생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부와 스펙 쌓기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간혹 학업을 게을리하거나 몇 시간 휴대폰을 사용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친구와의 놀이나 동영상 시청 등 본인이 원하는 활동을 해도 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는 데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도시 지역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거나 자기주도 학습시간이 많고 핸드폰 등 미디어 사용 시간은 적은 반면, 농어촌 지역 아이들은 일상 대부분을 미디어 사용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학원은 애들 다 다니는데 혹시라도 뒤처질까봐. (중략) 먹고 살 게 공부밖에 없어요.”
“ (자유시간이) 더 있으면 약간 죄책감이 들 거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자유로운 시간을 쓰고 나서, 제가 시간을 왜 그렇게 보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모든 학생들이 학원을 많이 다니잖아요? 그리고 ‘커서 돈 벌어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이러면서 어른들이 항상 학원을 보내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경쟁은) 심해지잖아요. 어른들이 그런 편견을 버리고, 이제 학생들한테 자유시간을 줬으면 좋겠어요.”
심포지엄에서 여가와 시간사용에 대한 아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한 안재진 교수(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학업이 최우선이고 여가는 시간낭비라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며 건전한 놀이의 가치를 인식하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여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토론에 참여한 박현선 교수(세종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사회복지학과)는 “이번 연구가 공부하는 아이들은 물론 노는 아이들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한국 아이들의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농어촌 지역 아이들의 자유시간이 높게 나타난 것은 방임의 결과일 수 있다.”며 “도농 간 자유시간 사용 양극화에 대한 좀 더 면밀한 조사와 함께 방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아이들의 시간 사용과 자유시간 만족도 증진을 위해 △청소년의 여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 △시간 사용에 대한 아동의 결정권 증대 △청소년의 여가 인프라 확대 등을 제안했습니다.
<한국 아동의 삶의 질에 관한 종합지수 연구>는 국제아동지표 연구그룹인Children’s Worlds가 수행하고 Jacobs Foundation이 지원하는 국제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책임연구원 이봉주 교수)가 국제 구호개발NGO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 17개 시도의 행복감 비교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데 이어 내년에는 30개국의 국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국제적 시각에서 한국 아동의 삶의 질과 행복도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2017 아동 삶의 질 종합지수 시도별 순위
▲1차 연구(2012년)~4차 연구(2017년)시도별 순위 변화
▲아동 삶의 질 지수와 재정자립도 상관관계
(가로 축-2017 삶의 질 지수, 세로 축- 2017 재정자립도)
▲아동 삶의 질 지수와 사회복지예산 비중 상관관계
(가로 축-2017 삶의 질 지수, 세로 축- 2016 일반회계 중 사회복지예산 비중)
글 박영의(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 |
윗글 | 가정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 삶의 질도 ‘뚝’ |
---|---|
아랫글 | 로힝야 사태 1년 되돌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