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형태에 따른 아동 삶의 질 연구 결과
부모의 실직이나 빈곤, 가정학대 등 다양한 어려움으로 가정 안에서 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위탁가정이나 흔히 보육원이라고 불리는 양육시설에서 크는 ‘가정 밖’ 아이들입니다. 2017년 한 해에만 4,121명의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발생했고, 이들 중 93%가 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 맡겨졌습니다. 올해 삶의 질 조사에서는 이 아이들에 주목했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특별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힌 아이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아이들. 이 아이들의 삶을 파악한 국내 최초의 연구입니다.
시설보호 아동과 복합 위기 가정 아동 삶의 질 낮아
이번 삶의 질 연구에서는 기존 조사 외에 양육시설과 위탁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는 전국 16개 시도(세종시 제외) 초3, 초5, 중1전체 733명의 삶의 질을 추가 조사했습니다. 나아가 다양한 가족 형태 (양부모 비(非)빈곤, 양부모 빈곤, 한부모·조손·기타 비(非)빈곤, 한부모·조손·기타 빈곤, 양육시설, 가정위탁 등 6가지 유형)에 따른 아동의 삶의 질을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시설보호 아동과 한부모·조손·기타 빈곤 가정(복합 위기)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평균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관용, 공감, 사회적 능력 등 바람직한 인성과 관계 영역에서 시설보호 아동이 낮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위탁가정 아동은 물질적 상황, 복합 위기를 겪고 있는 아동은 물질적 상황, 건강, 주관적 행복감 영역이 특히 낮았습니다.
반면, 시설이나 위탁가정 등 가정 밖에서 보호 받더라도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삶의 질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정 밖 아동의 연령에 따른 삶의 질을 분석한 결과, 특히 시설보호 아동은 건강과 주관적 행복감, 물질적 상황 영역이 연령이 높아질수록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이는 원가정에서 경험한 빈곤, 가정해체, 학대 등의 부정적 경험이 가정 밖 보호 체계에서 완화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한편, 가정 밖 보호 아동과 복합위기를 겪고 있는 아동 등 이번 연구를 통해 지원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난 아이들을 위해 연구진은 △보육사 추가 배치 등 가정 밖 보호 체계 돌봄의 질 향상 △위탁가정에 대한 현실적 지원책 마련 △빈곤, 가정해체 등 위기를 겪고 있는 가정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가정 밖 아동 발생 예방 △부모의 취업, 주거 지원 등 가정 밖 보호 아동의 원가정 복귀를 위한 지원책 마련 등을 제시했습니다. 지원대책을 포함해 ‘가정 밖’ 아동에 대한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연구를 진행한 김선숙 교수(한국교통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지난 8월 30일 있었던 삶의 질 심포지엄 직후 진행됐습니다.
Q. 이번 연구에서 특별히 가정 밖 아동의 삶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A. 유엔아동권리협약 20조를 보면 ‘당사국은 가정환경을 박탈당한 아동에 대해 특별한 보호조치를 제공하고 적절한 대체 가족양육이나 기관 배정이 이뤄지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가정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이 아이들을 잘 보호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가정 밖에서 보호되고 있는 아이들의 삶과 행복에는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어요. 이 아이들의 삶에 대한 연구가 그동안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가정 밖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을 포함해 다양한 가정 형태에 따른 아이들의 삶의 질을 보고, 궁극적으로는 구체적인 지원책을 제시하기 위해 이번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Q. 조사 결과 시설보호 아이들의 삶의 질이 가장 낮게 나왔습니다. 빈곤과 가정 해체 등 복합 위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의 삶의 질도 낮았고요. 어떻게 보면 예상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인 거 같은데요.
A. 단순히 보호 시설에 살아서 삶의 질이 낮다고 결론 내릴 게 아니라, 이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해요. 가정이 해체되고, 보호시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빈곤, 학대 등 여러 역경을 경험해요. 이런 환경을 경험한 시설 아동은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낮은 발달 수준을 보이고, 행복감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요. 시설이나 위탁가정 등 보호 체계의 결과라기 보다 아동의 누적된 발달 과정에서의 문제라고 봐야 하는 거죠. ‘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아이를 제대로 보살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아이들이 가정환경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상황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해요.
Q. 관용이나 공감, 사회적 능력 등 바람직한 인성 영역에서 시설보호 아동이 낮은 수준을 보인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건가요?
A. 발달 과정에서 돌봄의 부재가 누적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여요. 사회적 능력은 책을 읽는 것과 같이 노력을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자라는 환경에서 저절로 체득되는 거죠. 가정이 위기를 겪고 있다면 그런 기회가 부족했거나 아예 없었을 가능성이 커요. 시설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물리적인 환경이 개선되고 제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고 분명히 좋아지는 부분이 있겠죠. 하지만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똑같이 사랑해줄 사람, 편안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맺은 애착관계, 삶을 신뢰하고 공감하고 배려하고 이타심을 기르는 것은 보호시설에서 쉽게 채울 수 없는 부분이에요. 보호시설에 들어온 아이들은 건강 같은 영역의 간극은 금방 메워져요. 하지만 오랫동안 누적된 사회적능력 같은 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특히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학대 경험을 갖고 있어요. 전문 치료사가 있기도 하지만, 가정에서와 같이 긴밀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렵거든요. 나이가 들고 보호 체계 안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는데 여전히 바람직한 인성이나 인지 발달은 그 간극을 뛰어넘지 못하는 거죠. 심리적, 사회적 영역에 더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시설에서 생활하더라도 연령이 올라가면서 뚜렷이 좋아지는 부분도 있었는데요.
A. 아이들은 누적된 어려움, 경험, 박탈을 경험하고 가정 밖으로 내몰려요. 시설에 진입하기 전에 생긴 부정적인 경험과 진입했을 때 안전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두 단계로 나눠 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가정 밖 보호 체계에 맡겨지면 성인이 될 때까지 머무는 경우가 많아요. 나이가 많을수록 시설에서 오래 생활했다고 가정하고 결과를 봤더니, 건강이나 주관적 행복감 등이 개선된 결과를 보였어요. 반면, 바람직한 인성이나 교육은 오히려 후퇴하거나 큰 변화가 없었고요. 특히 보호 체계가 작동했을 때 가장 빨리 채워지는 영역과 더 노력이 필요한 영역을 파악하고 앞으로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거죠.
Q. 보육사 추가 배치 등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경우 시설보호 아동의 삶이 상당히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보신 건가요?
A. 돌봄의 질을 높인다는 건 가정과 가장 유사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걸 의미해요. 환경이라는 건 물리적인 환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최근에는 시설에서도 아동 수를 줄이고 아파트 같은 곳에서 운영되는 등 가정과 많이 유사해졌어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식판에 밥을 먹었다면 지금은 밥 그릇을 사용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사회적 능력 같은 건 조금 다르죠. 이건 나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고 상호 작용을 해주는 사람이 있느냐의 문제거든요. 학교에 다녀 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양육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거죠.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이런 경험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어요. 보육사를 추가 배치해서 한 명의 아이에게 쏟을 관심과 시간이 늘어나면 집중적으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대안 중 하나로 보육사 추가 배치를 제시한 거죠.
Q. 위탁가정 아동은 다른 영역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반면, 물질적 상황에서 매우 낮은 수치를 보였는데요.
A. 위탁가정 아동을 유형 별로 나눠보면 친인척이 아닌 사람이 보호하는 일반위탁이 7.9% 밖에 되지 않아요. 대부분은 조부모나 친인척이 보호하는 경우죠. 그런데 위탁가정에 맡겨지는 아이들 대부분이 빈곤이나 학대 경험이 있고, 조무보나 친인척 가정의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이런 환경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해요. 위탁가정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고요. 또 질문 중 내가 소유하고 있는 재화에 대한 만족도가 있는데요. 보호 체계에 있는 아이들은 책, 컴퓨터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내 것은 아니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아동 발달 단계에 있어서 자신만의 공간이나 물건을 갖는 게 중요한데 공동으로 소유하다 보면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Q. 양부모 비빈곤 가정 아동의 삶이 질이 가장 높아요. 이번 연구 결과만 놓고 보면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에서 아동이 잘 자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A. 정상가족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됐어요. 사회자본 이론이라고 있어요. 아동을 돌볼 수 있는 성인, 즉 사회자본이 일반적으로 양부모가 풍족할 수밖에 없죠. 한 부모는 경제활동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니까요. 부모만큼 강도 높은 돌봄을 해줄 수 있는 대체 인력을 찾기도 어렵고요.
다만, 이 문제를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릴 것이냐는 다른 문제예요. 취약한 가정,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서 아동을 키우는 것이 그 가정만의 책임일까요? 오히려 사회자본이 부족한 가정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해야 하는 거죠. 복합위기 가정에게 대체양육 서비스, 경제적 지원, 취업 지원 등 다각적인 지원을 하는 식으로 말이죠. 빈곤가정에도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을 한다면 아이들이 가정환경을 박탈당하지 않고 원가정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겠죠.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이번 연구는 가정 밖 보호 체계 아동에 대한 연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때문에 이번 연구만으로 시설보호 아동은 ‘이 영역이 열악하다’, 혹은 ‘부족하다’라고 섣불리 말하기 어렵기도 해요. 훨씬 더 구체적으로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정책 제안을 하려면 자료의 축적이 필요해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죠. 복합위기를 겪고 있는 아동도 마찬가지이고요. 정부 차원에서 5년마다 아동 실태조사를 하게 돼 있어요. 아동기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데 비해 주기가 너무 길어요. 아동기 때의 매 순간의 경험이 아동기는 물론 성인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거든요. 아동 전반이 아니라 시설 아동과 같이 지원과 도움이 필요한 아동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고요. 어른들이 우리 모두가 아동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연도별 보호 필요 아동 발생 건수 및 보호 조치 결과
▲가정 밖 아동 삶의 질 비교 대상 가정 유형
▲가정 유형에 따른 아동 삶의 질(양부모 비빈곤 가정 삶의 질=100, 100보다 숫자가 크면 평균보다 높음)
▲시설보호 아동의 연령에 따른 삶의 질 변화(양부모 비빈곤 가정 삶의 질=100, 100보다 숫자가 크면 평균보다 높음)
글 박영의(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