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하단바로가기
열기
HOME > 기관안내 > 세이브더칠드런이야기 > 나눔이야기

기관안내

후원하기

나눔이야기

글조회
뜨겁고 끈적하고 아프고… “밤에 잠도 못 자고… 그랬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퍼가기 인쇄
작성일 2018-09-10 조회수 8307

뜨거운 여름과 매서운 겨울이 반갑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비좁은 집에 사는 이들은 발 디딜 틈도 없는 곳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며 지내야 하는 여름을 꺼립니다. 몸서리치게 추운 겨울도 꺼려지긴 마찬가지입니다. 냉난방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정은 한여름과 한겨울이 언제 들이닥칠까 노심초사입니다. 특히, 올여름은 기록적인 폭염 탓에 유난히 뜨거운 고통(?)에 시달린 집들이 많았습니다. 노인과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여름이었습니다.


▲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선물한 쿨매트와 예전부터 사용하던 선풍기를  사이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시는 훈이 할머니.


태풍과 함께 여름도 물러갔습니다. 어느덧 초가을로 넘어가는 길목, 대리양육 위탁가정 방문을 위해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7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냉방용품을 선물한 가정입니다. 에어컨이 없고 주거환경이 열악한 대리양육 위탁가정을 우선 지원대상으로 선정해 선풍기 1대와 쿨매트를 1개를 전달했습니다. 대리양육 가정위탁은 가정 내 여러 사정으로 친부모 양육이 어려운 아동을 조부모(할아버지, 할머니)가 양육하는 가정위탁을 말합니다.


가장으로 살아가는 훈이


올해 고3인 훈이(가명)는 대리양육 위탁아동 입니다. 훈이네 할머니께서 걸레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구부정한 허리를 조심스럽게 펴며 맞아주셨습니다.
“왔소? 집은 누추하지만 들어와 예.”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왼쪽에 훈이 방, 좁은 부엌 바로 옆에 거실이 붙어있었습니다.
“할머니 저희가 드린 선풍기 어디 있어요?”
“그거 지금은 작은 아들네 갖다 뒀어. 이제 조금씩 바람도 불고 집이 좁아 둘 데가 없어”
“할머니 저 그거 보러 왔는데요? (농담)”
하지만 전에 사용하던 선풍기는 여기 있다며 예전에 사용하던 선풍기 한 대를 꺼내 보여주셨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선풍기 머리를 만지는데 머리가 들어 올려지지 않습니다. 보시던 할머니께서 한마디 던지십니다.


▲ 훈이네가 예전부터 사용하던 선풍기. 이미 몸체와 머리를 연결하는 부분이 부러져 있습니다.


“그거 안 올라가. 겨우 쓰고 있었는데, 그 큰 선풍기 보내줘서 얼마나 잘 썼는지 몰라. 고마워! 정말 시원하게 잘 썼어. 그전에는 선풍기를 틀어도 땀이 나서 온몸이 축축했는데 여기(작은 베란다를 손으로 가리키며)에 두고 쓰니 방에 바람이 확 들어와 좋더라고. 집이 엄청 더웠거든. 그 선풍기 못 받았음 큰일 날 뻔했어.
베란다는 선풍기 한 대 놓으면 꽉 찰 듯했습니다. 부엌 옆 훈이 방은 말이 방이지 성인 한 명이 누우면 꽉 찹니다. 동사무소에서 무료로 훈이 방 도배, 장판을 새로 해줬다고 합니다. 공사 기간에 훈이는 할머니, 지적 장애 3급인 누나와 함께 방을 썼습니다. 올여름 훈이는 공부보다 더위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겁니다.


▲ 정면에서 바라본 훈이 방 전체 모습입니다. 성인 한 명이 눕기에도 비좁아 보입니다.


훈이 할머니는 결혼한 지 10년 만에 남편을 잃고 세 아들을 혼자 길렀습니다. 자식들이 각자 가정을 꾸렸을 즈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훈이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순이 넘은 연세에 할머니는 다시 엄마가 됐습니다. 훈이 얘기를 하는 할머니 눈가엔 눈물이 고였습니다. 우리 훈이 공부도 잘한다며 훈이 상장을 보여주시는 할머니, 이번엔 웃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데 돈이 없어 대학에 가라고 선뜻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지.”
할머니는 다시 고개를 숙입니다.


▲ 선풍기와 쿨매트를 받자마자 훈이가 신이나 찍어보낸 사진입니다. 


훈이에게 올여름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습니다.

Q. 선풍기와 쿨매트를 받기 전엔 어떤 점이 가장 불편했어요?
A. 등하교 때 시원한 냉기를 느끼고 싶은데 집이 바깥보다 더 더울 때가 많았어요. 원래 쓰던 선풍기가 있었는데 가족이 다 같이 쓸 수 있을 만큼 많지 않았어요. 강풍도 다른 선풍기에 비하면 미풍 정도라 전혀 시원하지 않아요. 보내주신 선풍기는 높이도 높고 크기도 커서 좋았어요. 베란다에 내놓고 아주 잘 사용했어요.


Q. 쿨매트는 어땠어요?
A. 쿨매트도 있고 없고 차이가 컸던 것 같아요. 밤에 더워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쿨매트에 누울 때는 시원해서 살 것 같았어요.


▲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훈이네 선물한 쿨매트가 이불 위에 놓여있습니다.


Q. 고3인데 진로는 정했나요?
A. 학과는 정했어요. 건축에 관심이 많은데 워낙 경기가 안 좋단 소리를 많이 들어서 기계공학과로 정했어요. 기계공학은 미래 전망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실은 소외계층을 위한 집을 짓고 싶어 건축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근데 꼭 그 길이 아니더라도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는 일은 많을 거 같아요. 대학 가기 전에 시간이 있다면 자격증도 따고 싶어요.


Q. 왜 대학 가기 전에 자격증을 따고 싶어요? 대학 가서 따도 충분하잖아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불확실함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대학 가서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 한 개라도 더 배워두고 익혀두는 게 미래를 위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Q. 혹시, 더 필요한 것이 있나요?
A. 음… 딱히 없어요. 누나랑 할머니랑 이렇게 지내고 있는 현재가 행복해요. 이 정도면 감사해요. 네, 이 정도면요.


▲ 할머니께서 자랑스럽게 꺼내 보여주신 훈이가 받은 상장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한방 쓰는 사춘기 소녀 혜은이네


다른 대리양육 위탁가정도 어렵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혜은(가명)이네는 큰아버지 식구들까지 7명이 한 집에 모여 삽니다. 낡은 시골집이라 에어컨은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혜은이 할아버지는 척추질환으로 거의 20년째 누워계시고 몇 달 전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던 할머니는 곧 백내장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몸이 성치 않은 두 분과 혜은이에게도 올여름은 고통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인 혜은이를 대신해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보내주신 선풍기가 크고 좋대예. 정말 많은 도움이 됐십니더. 쿨매트도 시원하고 좋았어예. 아주 더울 때 그 매트 보내 주셨잖아예. 제가 4월에 급성파킨슨병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었는데 그 뒤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까, 우리 혜은이가 ‘쿨매트 할머니 써요’ 그러대예. 아이고, 갑자기 눈물 날라칸다. 거기(세이브더칠드런 산하시설인 부산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우리 아가 뭐 배울 수 있게도 해주시고 이렇게 선풍기도 주시고 참말로 많은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더. 참말로 감사합니더.”



밤마다 아토피로 고생한 진환이네


진환(가명)이네 3남매는 다른 위탁가정 아동보다 정신적·심리적으로 더 아픈 아이들입니다. 아픔은 매우 주관적인 감정이라 더 아프다 덜 아프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아픔은 모두가 아픔을 느낄 만큼 영향력이 큽니다. 그 아픔이 가슴에 새겨진 채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진환이네. 진환이 3남매는 올여름이 더 덥고, 아팠습니다.


위탁가정 아동과 같은 동네에서 지내며 이들을 돌보는 진환이 큰 아빠에게 진환이네 여름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집이 상당히 더운 편입니더. 햇볕도 많이 들어오고예. 올해는 유난히 더 더웠잖습니꺼. 그래서 보내주신 선풍기가 정말 유용했십니더. 아덜 중 하나가 아토피가 억수로 심한데 더워지기 시작하니까 밤에 잠도 몬 자고 그랬어요. 근데, 그 쿨매트에서 자니 덜 하더라고요. 잠도 잘 자고예. 이번에 선풍기와 쿨매트 주신 것도 그렇고 저희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십니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아동과 가정은 소외된 계층이 되기도 하고, 판자촌/독방에 사는 이들이 되기도 하고, 에너지 빈곤층이 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어느 한 부분만 지원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도움도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올여름 잔인한 폭염과 힘겹게 싸운 위탁가정과 위기가정, 소외된 아동과 그 가정에, 작지만 가장 필요했던 냉방용품을 지원했습니다.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도움을 주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앞으로도 세이브더칠드런은 소외된 아동을 위해 가장 적절한 때 가장 적합한 도움을 주기 위해 언제나 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올여름처럼 다가올 겨울에도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과 그 가정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글 이정림(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  |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 위탁가정, 위기가정 등 529곳에 냉방용품지원


지난 7월 세이브더칠드런은 빈곤가정 아동과 가족이 혹서기에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여름철 필수물품인 냉방용품 지원사업을 실시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위탁가정, 위기가정, 학대피해아동 가정, 난민가정 등 총 529가정에 선풍기, 쿨매트 등을 지원했습니다. 


게시글 윗글 아랫글
윗글 “인간이 만든 대재앙” 위기에 처한 1,130만 아이들
아랫글 가정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 삶의 질도 ‘뚝’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