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재희(가명)는 태어나서부터 계속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라왔습니다. 재희가 열두 살이 되던 해, 시설 운영상의 문제로 아이들은 갑자기 시설을 떠나야 했습니다. 재희와 함께 있었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다른 시설이나 위탁가정으로 보내졌습니다. 재희는 갈 곳이 없어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 재희에게 이윤경 씨(가명)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시설이 문을 닫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3일 내로 (위탁을 할지) 결정을 해야 해서 급한 상황인 아이다. 우리 가정에 적합한지 천천히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시설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정에 적응하기가 무지무지 힘든 아이일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묵묵히 제 말을 듣던 남편이 ‘그러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해라. 어떡하겠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라면’ 그러더라고요.”
윤경 씨 가족이 재희를 (전문)위탁하기로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까닭은 10년 넘게 두 아이를 위탁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3년 전, 윤경 씨는 봉사활동을 다니던 곳에서 6살, 3살 자매를 만났습니다. 사슴 같은 눈망울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두 아이를 돌봐주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가정위탁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밤에 무서워하고 그러는데, 얘들은 얼마나 밤마다 두렵겠어요. 놀라서 깨면 누가 옆에 있어 주겠어요. 조금만 더 잘 키우다 보면 부모들이 다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일텐데. 그 기간만큼이라도 키워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베테랑 위탁엄마인 윤경 씨도 한동안 마음을 열지 않는 재희가 쉽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가정에서 생활해보지 못한 재희는 집이 낯설었고, 엄마라고 부르는 윤경 씨가 낯설었고, 가족들의 관심이 낯설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와도, 아빠가 회사에 출근해도 인사를 전혀 안 해요. 아침에 이름을 부르면서 ‘잘 잤니?’ 인사를 해도 고개를 못 드는 거예요. ‘엄마는 너한테 인사했는데 너도 나한테 인사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다가섰어요. 아이와 교감한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상황이 반복되니까 벽을 두드리는 것 같고 문 없는 곳에 문 열려는 것 같고…. ‘나는 이 집에 와서 먹고 자기만 하면 돼. 그리고 아줌마는 키워 준다고 했으니까 키워만 주면 돼. 더 이상은 나한테 들어오지 마’ 재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재희는 평범한 일에도 움츠러들었습니다. 냉장고에 우유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걸 보고 윤경 씨가 ‘우유가 하나도 없네. 우유를 누가 다 먹었지?’하고 혼잣말을 하자 재희는 금세 거짓말을 했습니다. ‘난 안 먹었어요. 나 아니에요.’ 하지만 그날 우유를 먹은 사람은 가족 중 아무도 없었습니다. 재희가 우유를 다 먹었다고 말하면 윤경 씨는 분명 ‘잘했다. 니 많이 묵고 얼른 커라’ 이렇게 말했을텐데, 재희는 자기가 우유를 먹어서 혼이 날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윤경 씨는 재희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거짓말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재희한테 ‘오빠도 안 먹었고 엄마도 안 먹었는데. 우유 먹은 걸로 뭐라 하는 게 아니야. 엄마 혼자 하는 말이었는데 니가 두려워서 엄마한테 혼날까 싶어서 그랬을 것 같아. 그런데 니가 말 안하면 난 굳이 안 물을래.’라고 했죠.”
재희는 그 날 이후 며칠간 우유는 물론이거니와 밥도 잘 먹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윤경 씨는 조심스럽게 추측했습니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 크게 혼났던 경험이 있는 것 같아요. 순간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그냥 넘어가고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밥을 안 먹어요. 처음에는 밥 먹으라고 계속 불렀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방문을 살짝 닫고 들어갔더니 애가 나오더라고요. 아무도 없으면 나와서 막 먹어요. 아마 잘못을 하면 밥을 안 먹었나 보다 생각했어요.”
그런 재희를 이해하는 데에는 세이브더칠드런 전문가정위탁시범사업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담을 받기 전에는 (아이가) 어떤 사고를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예전에 어떻게 컸다는 일지 하나를 본 것도 아니고. 아이가 상담 받는 곳에 가서 아이 상태라도 내가 알 수 있으니까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나중에는 위탁가정 부모에게도 상담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는데, 상담 받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윤경 씨가 재희를 생각하는 만큼 가족 모두가 재희에게 마음을 쏟았습니다. 윤경 씨 남편은 재희가 처음 집에 오는 날 아빠가 있어야 된다며 출장 중 급하게 집에 와서 재희와 함께 식사를 했고, 큰 아들과 둘째 딸은 종종 집에 올 때마다 재희를 막내 동생으로 받아줬습니다. 재희는 윤경 씨와 가족들의 따뜻함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어느 날 윤경 씨는 재희가 방을 청소해주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재희도 우리 가족 구성원이니까 자기가 쓰는 방은 자기가 치우게 하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내가 오늘은 엄마 방 청소 좀 해 줄게요.’ 이러는 거예요. 이건 나를 위해서 뭔가 해주는 거예요. 전에는 절대 없었거든요. 우리 집 소속이 아닌 것처럼 그랬는데….”
변화는 지난 5월 어린이날즈음에도 있었습니다. “재희가 ’어린이날에 저한테 뭐 해주실 거예요?’ 이렇게 묻는 거예요. 뭐 해줬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니까 ‘어린이날에는 이런이런 선물을 받고 싶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자기가 원하는 걸 무조건 요구하고 당연하게 받아야 된다는 것처럼 말했거든요. 밥만 해주면 되고, 자기가 요구하는 것만 해주면 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왜요, 나한테 이런 거 왜 해줘요’ 이랬다면 이제는 ‘그거 해주세요. 나한테도 해주세요’ 이렇게 칭얼칭얼도 하고 ‘와, 세상에 엄마가 최고야’ 이런 표현을 하는 거예요. 종종 그럴 때면 나를 엄마로 받아들였다는 게 느껴져요.” 하지만 여전히 윤경 씨는 재희가 마음 문을 다 연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재희의 12년 인생에서 처음 생긴 가족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재희 곁에 항상 있을 윤경 씨를 생각하면 마음이 놓입니다.
재희까지 벌써 세 명의 아이를 위탁하고 있지만 윤경 씨는 할 수 있는 한 위탁엄마로 살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문제 아이들이 많다고 해요. 문제 아이의 아픔을 내가 같이 아파주면 그 애는 덜 아플 거고, 자신의 아픔을 감싸주는 걸 겪은 아이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아이가 될 거잖아요. 나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할 것 같아요." 윤경 씨 말처럼,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의 아픔을 감싸줄 때, 그 아이들이 다시 누군가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학대피해아동을 가정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보호하는 전문가정위탁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더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