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전쟁을 피해 이웃 마을로 도망친 돼지 삼 남매가 집을 짓습니다.
첫째는 방수 천을 이용해 텐트를 세웠습니다. 더 좋은 집을 짓고 싶지만, 우선은 차가운 밤바람에서 가족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입니다. 둘째는 침대 없이 바닥에서 자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목재를 사용합니다. 여전히 옆집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릴 정도로 사생활이 보장되진 못하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을 막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 해 겨울 폭설이 내렸고 눈이 녹아내리며 온 집 안으로 물이 들이닥쳤습니다. 돼지 삼 남매는 곧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 해, 두 해를 넘기고 수많은 겨울을 맞이할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벽돌집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타난 늑대가 얘기합니다. 난민이 벽돌과 콘크리트로 "반영구 구조물(semi-permanent structure, 5줄 이상의 벽돌로 세워진 건축물)을 세우다니! 시간을 줄 테니 그때까지 집을 무너트리고 방수 천과 나무만 사용해서 집을 짓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동원해 철거해주겠어!"
삼 남매는 눈물을 흘리며 집을 무너트립니다. 전쟁 통에 남편을 잃어 혼자 집을 지었던 셋째는 망연자실합니다. 집을 세우기까지도 힘들었지만 이미 있는 집을 무너트릴 만한 장비를 구하는 것도, 비용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화로 각색해본 이 이야기는 실제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레바논 동쪽의 아르살(Arsal)은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작은 도시입니다. 시리아 분쟁이 시작되고 난민이 유입되면서 약 40,000명가량의 난민을 품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지역 주민의 따뜻한 환대 속에 레바논에 정착하긴 했지만, 도시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시리아 가족의 삶은 녹록지 않습니다. 난민이 크게 유입된 초반에는 임시 텐트를 설치해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기 때문에 난민 캠프를 세우려면 넓은 공터가 필요했고, 따라서 사유지에 소정의 임차료를 내고 캠프를 형성하게 됐습니다.
▲ 홍수 피해를 입은 레바논 베카 계속 인근의 난민 캠프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겨울에도 소개드렸는데요(관련글), 레바논의 겨울은 폭설이 자주 내리고 녹기 때문에 공터에 세워진 임시 캠프는 침수 피해를 입기 쉽습니다.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처음 레바논에 도착한 난민 가족들은 생존을 위해 집을 보강해야 했습니다. 매년 텐트에 물이 들어차 옷과 세간이 흙탕물에 휩쓸려버리면 애써 삶을 살아가려 노력했던 시간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아르살 난민 캠프는 한 가구당 평균 세 명의 자녀가 있는 만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집은 포기할 수 없는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지난 4월, 레바논 당국이 방수 천과 나무를 제외한 재료로 지어진 "반영구 구조물"을 전부 철거하도록 결정했습니다.
▲ 지침에 따라 다섯 줄 이상의 벽을 부순 아르살 난민 캠프
벽돌을 5줄 이상 쌓아올린 건물은 철거 대상이 되었고, 만약 스스로 집을 무너트리지 않으면 군 병력이 중장비를 동원해 강제 철거를 시행하겠다 공표했습니다. 7월 1일로 최종 기한이 결정되자 약 2,700여 가구가 스스로 집을 무너트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가장 먼저 대상이 된 아르살 지역은 해머와 손에 닿는 장비를 동원해 벽과 천장을 부숴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무너진 잔해 옆에 허술한 텐트를 세우고 지내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엔은 이 조치 때문에 약 12,500명에서 15,000명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이 중 약 7,500명에서 9,000명가량의 아동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집을 무너트려야 하는 가족들의 불안한 마음은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이른바 '여성 가장 정착지(Widow Settlement)'라 불리는 58개 가정의 가족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부분 피난길에 남편을 잃거나 부모님을 여읜 아동이 함께 의지해 살아가고 있어 집을 무너트릴 힘도, 비용도 마련할 수 없어 정부의 조치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 집 안에 서있는 마하(23살, 가명)와 샤디(5살, 가명) 모자
시리아에서 온 마하(Maha, 가명)는 다섯 살 아들 샤디(Shadi, 가명)와 함께 사는 스물셋의 싱글맘입니다. 삼 년 전 남편을 잃고 국경 도시 아르살(Arsal)에서 콘크리트로 벽을 세운 집에 살고 있습니다. 샤디는 엄마에게 철거가 뭔지 계속해서 물어봅니다. 길에서 자야 하는지 아니면 어디로 갈 수 있는 건지 궁금해합니다. 일주일 전 정부 담당관이 찾아온 뒤로 마하는 제대로 눈을 붙이지도 못했습니다.
마하는 집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이와 단둘이 사는 집에 누군가 찾아오더니 집을 무너트려야 한다고 말했을 때 너무나 힘든 감정을 느꼈어요. 모든 세간을 밖으로 꺼내고 지내던 공간을 무너트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수록 말이죠. 방문과 창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콘크리트로 이뤄진 건) 그저 벽일 뿐이에요. 지붕을 한번 보세요. 그냥 천 조각일 뿐입니다.
저희는 이곳에 집을 소유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 그 누가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닌 낯선 장소에서 지내고 싶어 하겠어요?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이에요. 우리는 죽음보다 나을 것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사마(47살, 가명)는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자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한다
세 아이의 엄마인 사마(Samah, 가명)는 지금의 사태를 '또 다른 이주'라 칭합니다.
" 시리아를 떠난다는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야 했습니다. 우리는 죽은 아이들과 남편을 땅에 묻어야만 했고요.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안식처가 이곳(여성 가장 정착지)입니다. 여기엔 남편을 잃은 여자들뿐입니다. 남성 노인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장애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노숙자가 돼버렸습니다. 무너진 잔해 속에 세간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어요. 말로 다 할수 없을 지경입니다."
"우리는 강인합니다. 시리아를 떠나야 했을 때도 굳건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강인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온 건 정착하거나 주인이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벽돌이든 방수포든 이런 걸 가진다고 해서 주인이 될 수는 없는 거예요. 우리는 커다란 집들을 뒤로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도 우리가 합의한 일이 아니에요. 지금 여름이라 다행이지 겨울에 눈이 쌓이면 1.5미터까지 쌓입니다. 방수포 지붕이 견딜 수가 없어요. 눈 녹은 물이 방으로 새어 들어옵니다. 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으면 침수되는 것처럼 말이죠. 대체 방수포로 무얼 막을 수 있겠어요?"
▲ 레바논 정부가 제시한 철거 기한인 2019년 7월 1일 군 병력이 진입해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레바논 사무소장 앨리슨 젤코비츠도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많은 시리아 가족들이 스스로의 손에 장비를 쥐고 집을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시리아에서 자신이 살던 집이 무너지는 걸 본 데 이어 두 번째 집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붐비는 텐트나 길에서 자는 충격적인 경험을 해소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수많은 어머니가 제대로 된 화장실과 샤워시설 없이 한여름에 자녀의 청결을 유지하고 질병에서 보호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호소합니다. 최소한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양동이를 채워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얼마 안 되는 소지품을 챙겨 무너진 집 옆에 두거나 친척 집에 맡겨두고 숙소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명의 난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미래를 알 수 없는 공간 속에 방치된 채 앞으로 더욱 취약한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입니다."
▲ 아르살 난민 캠프에서 곧 철거될 건물 벽에 여자 아이가 앉아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철거로 집을 잃은 가족들에게 텐트, 방수 천, 목재와 공구로 이뤄진 주거지 키트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또한, 쉽게 이동이 가능한 아동친화공간을 세워 지역에 거주하는 난민 아동의 심리 사회적 회복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우선 철거가 진행되는 지역에 집중할 것이며 나이대와 성별에 맞는 물품을 제공해 모든 아동이 활동에 참여하도록 이끌 것 입니다. 연이은 이주와 주거지 철거 때문에 트라우마가 촉발될 수 있는 만큼 이동식 도서관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아동의 심리적 회복을 이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신지은 |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누르 와히드